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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7일 수요일

신사임당에 대한 내용

아버지 명화는 사임당이 13세 때인 1516년(중종 11)에 진사가 되었으나 벼슬에는 나가지 않았다. 기묘명현(己卯名賢)의 한 사람이었으나 1519년의 기묘
사화의 참화는 면하였다. 외할아버지 사온이 어머니를 아들잡이로 여겨 출가 후에도 계속 친정에 머물러 살도록 하였다.


이에 사임당도 외가에서 생활하면서 어머니에게 여범(女範)과 더불어 학문을 배워 부덕(婦德)과 교양을 갖춘 현부로 자라났다. 서울에서 주로 생활하는 아버지와는 16년간 떨어져 살았고, 그가 가끔 강릉에 들를 때만 만날 수 있었다.
19세에 덕수 이씨(德水李氏) 원수(元秀)와 결혼하였다. 사임당은 그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아들 없는 친정의 아들잡이였으므로 남편의 동의를 얻어 시집에 가지 않고 친정에 머물렀다.

결혼 몇 달 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친정에서 3년상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갔다. 얼마 뒤 선조 때부터 시집의 터전인 파주 율곡리에 기거하기도 하였고,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백옥포리에서도 여러 해 살았다. 이따금 친정에 가서 홀로 사는 어머니와 같이 지내기도 했으며, 셋째 아들 이이도 강릉에서 낳았다.

1541년(중종 36) 38세에 시집살림을 주관하기 위해 아주 서울로 떠나왔으며, 수진방(壽進坊 : 지금의 종로구 壽松洞과 淸進洞)에서 살다가 1551년(명종 6) 봄에 48세에 삼청동으로 이사하였다. 이 해 여름 남편이 수운판관(水運判官)이 되어 아들들과 함께 평안도에 갔을 때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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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 따지자면, 부잣집 딸이 있는데

그림 공부한다고 남편 졸라서 친정집에서 계속 눌러 앉으면서 공부한거다.

집안일? 잘사는 부모님 집에서 종써가면서 미술공부 했던거임

그것도 20년동안 ㅋㅋ20년이 지나고 신사임당이 38~40살이 되었을때 강릉 친정집에서 서울로 이사옴

근데 더 웃긴건 서울로 이사왔지만 뻑하면 친정 집인 강릉으로 내려가서 생활함 ㅋㅋ

그러다 48세에 죽음


요약

1.부잣집 딸인 신사임당은 결혼 후에도 그림공부한다고 20년동안 친정에서 생활함
2.율곡 이이를 낳음, 솔직히 그당시에 신사임당은 화가보다는 율곡이이 엄마로 유명함
3.그림 몇장 그리다가 48세에 죽음

업적? 율곡이이를 낳음


율곡이이에 대해서 모르는 애들이 있을까봐 요약해놓는다.

그냥 낡아빠진 조선의 정치를 점진적으로 대표적인게 임진왜란전에 10만양병설이 있는데, 이건 논쟁이 많은부분이다. 율곡이이가 주장했다고 하는 파랑 안했다는 파랑 싸우는 중이고
대동법, 사창제등 여러가지 정책을 건의해서 조선사회를 그나마 살기 좋은 세상으로 만들려고 노력했지만 조선은 바뀌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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